1. 베토벤(1770~1827)
베토벤은 독일 본에서 가난한 음악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조부는 쾰른 궁정의 베이스 가수였고 후에는 악장이 되었고 세살 때 병사했으나 베토벤의 음악성에 영향을 주었으리라 생각할 수 있다. 부친은 궁정의 테너 가수 였는데 조부의 큰 재능에 압도당하여 있던 재능도 발휘하지 못했다. 베토벤에게 음악적 재능이 있음을 일찍이 알고 무리한 교육을 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모차르트의 부친이 한 것처럼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은 아니었다. 베토벤이 굳은 성격이 아니었다면 음악을 멀리할 수도 있었을 정도였다고 전한다. 베토벤은 네페라는 궁정의 오르간 주자를 만나 작곡 기법을 배우고 음악을 체계적으로 접하게 된다. 베토벤의 집안 형편도 한편 생각해 주는 스승을 만나 베토벤은 열네 살에 실력을 인정받고 궁정의 오르간 연주자가 되었다.
어머니가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는 날마다 술로 세월을 보냈다. 베토벤은 어린 두 동생을 돌보기 위해 피아노 교사를 하며 생계를 책임졌다.
그러다가 아버지도 세상을 떠나고 두 동생의 생활도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스물두 살에 빈으로 와서 세계적인 음악가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지도를 받았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시기에 하이든과 모차르트 외에도 요한 생크에게 대위법을, 모차르트의 호적수라 일컬어지는 살리에리에겐 성악의 작곡법을, 알브레히츠베르거로부터는 푸가 작곡법 등을 배웠다.
베토벤은 실력이 눈부시게 발전해 연주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했다. 하지만 빈 사교계의 화려한 생활은 베토벤에게 여러모로 맞지 않았다.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이나 이상한 행동으로 일반인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고 한다.
1800년에 들어서며 드디어 빈의 부르크 극장에서 베토벤은 자신만의 연주회를 연다. 이때 마지막곡으로 《제1교향곡》 Op.21이 연주되었다. 이 곡은 하이든과 모차르트에게서 배운 기본 구조를 갖췄으나 화성 진행의 참신함과 스케르초풍의 남성적인 미뉴엣 등 베토벤 자신의 것을 잘 새겨넣은 곡으로 평가된다.
이렇듯 순조로운 작곡가로서의 삶이 펼쳐지려는 때 그에겐 치명적인 귓병이 발현된다. 어릴 때부터 가난하여 제대로 못 먹고 약간의 수입으로 두 동생과 생활하면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지 못한 여파로 여겨진다. 이 당시 청력이 나쁘다는 사실을 베토벤은 감추고 있었다. 오죽하면 그의 피아노 애제자였던 체르니도 자서전에서 스승의 귀가 어두운 줄을 몰랐다고 쓰고 있다. 아마 베토벤은 그런 사실이 알려지면 음악가로서 활동할 수 없게 되지 않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한 때 유서를 써 놓기도 했던 베토벤은 다시 꿈을 가졌다. 병과 싸우면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음악 활동을 열심히 했다. 마침내 작곡한 곡을 연주하는 날, 청중은 베토벤의 음악에 감동하여 끊임없이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박수 소리를 듣지 못한 베토벤은 지휘를 마치고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 한 연주자가 베토벤을 돌아서게 하자 그제야 베토벤은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가난과 질병과 싸우면서 베토벤은 《교향곡 5번: 운명》과 《교향곡 6번: 전원》, 《교향곡 9번: 합창》을 비롯해 《월광곡》과 《엘리제를 위하여》 등의 피아노곡과 현악 4중주곡 그리고 《환희의 송가》 등 아홉 개의 교향곡을 발표했다.
2. 슈베르트(1797~1828)
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는 1797년 1월 31일 오스트리아의 힘멜포르트그룬트에서 출생했다. 그는 클래식과 낭만주의 음악을 연결시키는 오스트리아의 작곡가로 인정받고 있으며, 노래(리더)와 실내악에서의 멜로디와 화음이 주목받았다.
슈베르트의 아버지, 프란츠 테오도르 슈베르트는 학교 교장이었고, 어머니 엘리자베스는 결혼 당시 가정부로 일하고 있었다. 슈베르트는 네 명의 생존한 아들 중 막내였다. 그의 가족은 음악적이어서, 집에서 현악 사중주를 연주할 정도였는데 이때 어린 슈베르트는 비올라를 연주하였다고 한다.
슈베르트는 아버지와 형 이그나츠에게서 음악 교육의 기초를 배웠고, 나중에는 교회 오르간 연주와 음악 이론은 교회 오르간 연주자의 지도 아래 배웠다. 1808년에 그는 장학금을 받아 황실 교회 합창단의 일원이 되고, 비엔나의 주요 서민 학교인 슈타트콘빅트에서 교육을 받았다.
슈베르트는 학생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였고, 곧 리더로 올라가 주 지휘자가 없을 때는 지휘도 맡았다. 그는 합창 연습에도 참석하였고, 동료 학생들과 함께 실내악과 피아노 연주를 연습하였다.
슈베르트가 이렇게 어린 시절에 그의 음악적 재능을 드러내자, 부모님은 그를 음악 학교에 보냈다. 1813년에는 독일의 유명한 음악 학교인 비엔나 음악원(Staatskonvikt)에 입학하여 음악 교육을 받았다. 이 학교에서 슈베르트는 여러 작곡가들의 작품을 연주하고, 그들과 친분을 쌓는 등 음악적 교류를 통해 자신의 음악적 스타일을 발전시켰다. 그는 음악 작곡을 계속하였고, 1813년부터 1815년 사이 많은 노래를 작곡하였다. 1814년에는 피아노 곡, 현악 사중주, 교향곡, 그리고 3막 오페라 등을 작곡하였고, 다음 해에는 추가로 두 개의 교향곡과 그의 첫 리트, “그레첸 암 슈핀라데”와 “에를코니히”를 작곡하였다.
1818년에는 제국 음악원(Hofkapelle)의 합창단에 합류하여 작곡가로서의 경력을 쌓았다. 그의 첫 번째 가곡 사이클인 ‘도모한츠 노래(Die schöne Müllerin)’와 ‘겨울 여행(Winterreise)’은 그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오늘날에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그 후 슈베르트는 음악 작곡가로서 성장하면서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남겼다. 이어서 실내악, 교향곡, 교회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작품을 발표했다. 그의 교향곡 중에서는 ‘비엔나 대왕’이라 불리는 교향곡 번호 9가 가장 유명하다.
슈베르트의 삶은 불안정하고 어려운 면도 있었다. 그는 건강 문제와 가난으로 고통받았으며, 그의 작품 중 일부는 죽음과 고독, 비극적인 주제를 다루기도 했다. 1828년 31세의 어린 나이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음악은 그의 짧은 삶과는 달리 영원한 존재로 남아있다. 슈베르트의 음악은 오늘날에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그의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연주되고 감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