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공장, 발전소 등 많은 요소로 구성된 시스템에는 두 가지 이상의 장애가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경우가 생기고 적절한 대처가 어렵다. 이를 상호작용적 복합성 (Interactive Complexity)이라 부르며 시스템이 긴밀하게 연계 (Tight Coupling) 되어 진행이 빠르고 여러 요소를 동시에 차단할 수 없다면 대형 참사로 이어진다. 이처럼 시스템 속성에 따라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사고를 정상사고 (正常事故)라 한다. 예일대 사회학과 찰스 페로 교수는 1979년 미국 스리마일섬 핵발전소 사고조사에 참여한 결과, 특별한 이상 징후가 없는 상태에서 사소한 기계 오작동이 원인이 된 것으로 실상을 파악하면서 새로운 개념으로 제시한 것이다.
스리마일섬 사고 원인 관련, 대부분의 연구는 운영자의 대응 미숙이며 안전장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나 페로는 시스템 속성에 따른 사고 (事故)라는 관점으로 접근하였다. 즉 사고발생 후 원인을 파악할 수 있으나 사고 진행 순간에는 파악할 수가 없으며 안전장치를 추가로 설치하면 대응을 더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사고는 비정상 상태에서 발생한다는 관념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정상 상태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라는 주장은 정신적으로 충격적이다. 이러한 불편한 진실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정상 사고가 피할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이라면 이를 인정하고 올바른 대책을 세우는 것이 마땅하다. 진단을 제대로 하여 올바른 해결책을 제시해야 하며, 페로는 다음과 같은 견해를 제시한다. ”우리는 전문가의 판단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전문가는 절대적, 과학적 합리성에 근거하여 위험을 평가하도록 훈련되어 있고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획득하여 세부적인 데는 강하지만, 맥락을 파악하고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데에는 약할 수가 있다. 전문가들의 특수 기법은 정량화를 위주로 하므로 특정 편향을 띠게 된다“
위험과 사고는 규제과학 분야로서 실험과학과는 달리 신뢰성에서 차이가 날 수 있어 전문가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그릇된 판단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페로는 ”사회적 합리성이 이러한 부작용을 완화시키고 새로운 문제의 해결방안을 제시하며, 고위험 기술시스템과 공존하는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시스템이 내포한 복잡성과 위험성을 인식한다면 사고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대형사고가 발생한 기업이나 정부 기관으로부터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발생하여 죄송합니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발생하여 안타깝습니다”라는 유감 표명이나 사과를 듣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말하는 기업은 위기관리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우리 사회에 위험성은 항상 존재한다. 기업은 안전한 제품 만들려 하지만 결함이 제로가 될 수는 없다. ‘위험성을 전혀 없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상황에 따라 사고가 발생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라는 주술(呪術)에 속박당하면 사고(思考) 정지에 빠진다. 위기 관리능력이 존재하지 않게 되어 냉철한 위험성 분석, 사고 직면 시 대처방법 등의 발상이 나오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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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콘스텔레이션 에너지)* 마이크로소프트 사가 미국 펜실베니아 주 스리마일섬 원자력발전소 1호기 재가동 계약을 미국 콘스텔레이션 에너지와 체결, 2028년 재가동 예정(디지털투데이, 2024.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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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예가 세월호 사고다. 이 사고 이전까지 사고를 상정한 훈련을 하지 않았거나 형식적이었다. 위험성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사고는 있어서는 안 되는 성질의 것’, ‘사고는 일어나면 안 된다.’ 또는 적어도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는다.’등의 막연한 생각에 파묻혀 있었다. 이를 극복하는 방안은 다음과 같다.
① 위험성을 ‘있어서는 안 된다.’라는 정신론적 영역으로 간주하지 말고, 위험성 존재를 인식하고 위험의 크기를 평가한다. ② 평가된 위험의 크기에 따라 이를 최소화하기 위한 예방시스템을 구축한다. ③ 만일을 상정한 행동규범을 사전에 마련하고 훈련을 실시한다.
이러한 접근방법은 기계설비의 안전에 관한 국제기준 이론과 일맥상통한다. “안전조치를 취한 후에도 위험성은 잔존하며, 찰과상 정도의 위험성이면 허용된다.”라는 것이다. 국제기준이 지향하는 것은 절대 안전이나 명분이 아니며, 현실적, 실용적 방법으로 안전을 실현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사고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라는 ‘절대 안전’ 세계에 빠져 있다. 제품의 위험성은 기술의 한계에 기인한다. 연필 한 자루도 위험성 제로는 불가능하다. 끝이 뾰쪽하므로 사용하다가 상처를 입을 수 있다. 경미하더라도 사고 발생 가능성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 이차선 도로에서 앞차를 추월할 때 굴곡선이라 마주 오는 차를 확인할 수 없을 때는 무조건 위험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절대 안전’을 주장하면 자기합리화로 사고 은폐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사고를 숨기면 원인분석과 대책 마련의 기회를 잃는다. ‘절대 안전’ 주장은 역설적으로 큰 사고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위험성이 존재하는 한, 사고는 발생할 수 있다.’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를 상정하여 대책 수립과 대응 훈련을 실시해야 한다. 사고를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피해를 키울 수 있다. 사고 위험성 존재를 인정한 후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안전확보의 첫걸음이다.
(참고 서적: 무엇이 재앙을 만드는가? 찰스 페로 저, 김태훈 옮김, RHK 출판, 2015년/안전사회, 새 지평열기, 김형준 저, 박영사 출판, 2024년)